Monday, September 22, 2014

오랜 일기장을 다시 보며


2012년 9월 27일, 목

8월도, 9월도 일기를 쓰지 못하고 지나갔다. 9월도 마지막주. 어제 병원에 가서 "장티푸+말라리아" 판정을 받고 저녁때까지 앓다가 약을 먹고 다소 나아졌다. 

34살, 조금 한심한 생각이 든다. 아들이 3살이 되어가는데, 우리 커플은 안정된 직업도, 안정된 장소도 없이 이렇게 붕 떠서 살고 있다니. 현재의 일에 대한 열정도,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도 그닥 보이지 않고, 천둥소리가 계속 울리지만 비는 오지 않고 후덥지근한 답답한 상황이다. 마르꼬는 천성이 매사에 불만이 적고, 아프리카의 느슨한 생활모드, 인간관계에 만족을 느끼고 있을런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만, 그게 결정적인 공허함을 그리고 불안을 채워 주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을 하고,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그림이 쉽게 그려지질 않는다. 


by the way, 그 동안 스토코(우리동네)에 전기가 들어왔다. 그리고 알리(빵파는 아이)는 학교 졸업성적 조작을 나에게 들킨후 연락을 두절했고, 죠셉은 wasc(고등학교졸업시험이자 대학입학의 기준이 되는 시험)에서 1과목 우수, 1과목 패스로 결국, 대학 진학이 좌절되었다. 




우기의 끝무렵이었구나. 7,8월 매일매일 하루종일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 전기도 없이(기름을 사용해서 전기 발전기를 돌려서 사용할 수 있는 전기이 시간은 오후 8:00시부터 10:00까지) 하지만, 비가 올때는 실외로 발전기를 운반해서(실외에 놓아 둘 경우, 도난과 고장이 우려됨으로) 집의 전선과 연결시키고, 발전기를 작동시키는데 고장이 자주 났다. 전기 발전기는 엄청난 소음과 기름이 타는 냄새가 나서 실내에서는 작동시킬 수 없어서, 켜야 할때는 마당 구석의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설치해서 작동시키고, 사용후에는 다시 집안으로 들여왔다. 끝없는 우기의 습하고 서늘한 날씨에 기분이 엄청 우울했었구나. 대학도 방학이고, 안토니오 유치원도 여름방학이어서 하루종일 집안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보낸 기억이 난다.

그런데, 9월에 공공전기가 우리 단지 안에 들어왔고, 발전기의 소음, 냄새 모든 것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하루종일 스위치만 켜면 전기가 들어오는 문명의 세계로 들어왔구나. 알리라고 빵파는 소년이 있었다. 알리는 한참 동안 자기가 우수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할 돈을 마련하려고 빵을 팔고 있다며 학비를 좀 지원해 달라고 맨날 졸졸 나를 따라다녔다. 그런데, 도와주려고 보니 중학교 졸업성적이 고등학교 입학에 훨씬 미달이었고,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제딴에는 엄청 노력을 했는데, 나한테 들켜버렸다. 결국 그 소년에게 도움을 주려고 주선했던 장학금은 대학시험을 망치고 엉엉 울었던 우리집 착한 이웃청년 죠셉의 재수학비로 사용되었다.

돌이켜 보면, 가슴이 아프다. 성적이 좋든, 나쁘든 이제 열 다섯, 열여섯 나이의 그 소년은 얼마나 상급학교에 가고 싶었을까?어떤 나라에서는 그저 당연히 누려야될 교육의 권리가 또 다른 세상에서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쟁취해야만 하는 그런, 감히 상상을 할 수도 없는 그런 꿈이다. 죠셉이 태어났을때 시에라리온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 아이가 10살이 될때 전쟁이 끝났다. 그 동안 죠셉은 학교에 갈 수 없었고, 난민캠프에서 한 번 학교갈 기회가 있었을때는 교복이 없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당했단다. 전쟁이 끝나고 10살의 나이에 초등학교에 들어갔을때 배움에 너무 기뻐서 잠도 안 자고 공부를 했고, 중학교에 가서는 교과서를 사오지 않으면 수업을 듣지 말라고 선생님이 내쫓아서 친구들과 교과서를 살 돈을 마련하려고 흙벽돌을 만들어 팔고, 집짓는 곳에서 일을 했단다. 대학 들어갈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막상 성적을 받고 보니 대학을 갈 수 있는 자격이 되지 않았다. 키큰 꺾다리가 꺼이~꺼이~우는데 너무 슬퍼보였다.


 9월22일 

*오늘의 가계부 (화폐단위는 리온) (참고,1$=4310 leone/ 1Euro=5529/1000원=4026)


은행에 월급 500,000 저금. 

바구니 1개 1500
오카다(오토바이 택시 왕복) 2000
점심 10500
빗자루 1개 25000
두루마리 휴지 10개 25000
소금 1컵 1000
기름 2컵 5200
양파 8개 4000
마요네즈 1통 12000
샴푸 1통 10000
코코아 1통 32000
형광등 3개 15000
쌀 4컵 3400
밀가루 5컵 6000
오렌지 6개 2000
연필깎이 400
고추 1컵 1500
세제 1봉지 5000
정어리캔 2개 7000



-100불이 조금 넘을까? 월급을 현금으로 받으면 늘 배낭이 필요하다.누런 서류봉투에 가득 든 지폐 뭉치가, 그것도 두 세 뭉치 아주 묵직한게 우리 월급이다. 운 나쁘게 10000리온짜리 지폐가 모자라 5000리온이나, 그것도 모자라 1000이나 2000리온짜리 뭉치가 섞이면 아주 부피와 무게가 대단하다.

-점심 가격을 보니, 학교 식당에서 누굴 초대해서 먹었나보다. 새로 생긴 리바논 식당이나 학교 밖의 식당에서 먹기엔 택도 없이 부족한 가격이고, 만만한 학교 식당에서 맘 놓고 먹었나보다. ㅋㅋ

-오렌지, 고추, 쌀, 기름, 양파 등 컵으로 파는 것 빼면 다 수입제품이다.밀가루는 분명 수입이고, 쌀도 수입인 경우도 있다.현지 물가에 비해서 가격이 비싸서, 포장된 봉지 단위를 팔지 못하고 풀어서 판다.낱개로, 혹은 컵으로, 나누고 나누고 나누어서...

-공산품은 다 수입이고, 빗자루, 휴지 이런 일상생활용품이 세식구의 한끼 점심보다 훨씬 비싸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